본문 바로가기
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7

20070216 최전방에서 적장의 칼을 맞고 장열하게 전사할 판

by 굼벵이(조용욱) 2024. 2. 20.
728x90

2007.2.16(금)

KJY노조위원장이 전무님께 정식으로 나의 전출을 의뢰한 모양이다.

전무님이 찾아서 전무실에 가보니 나보고 K위원장을 한번 만나보라고 한다.

사실 K위원장은 나랑 한번도 업무와 관련하여 이야기를 나눠본 적이 없다.

오직 P국장이나 지난번에 노조에서 물갈이 된 KJ국장과 주로 정책협의가 있었었다.

K전무 입장에서도 이제는 더 이상 나를 보호하기가 곤란하다는 표정이다.

이제부터 토사구팽의 또다른 신화를 쓰고 있다는 느낌이 밀려온다.

처장을, 전무를, 사장을 보호하기 위해 그들의 지시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의 이름도 팔지 않은 채 내 이름으로 최일선에서 지금껏 노조의 무리한 요구에 맞장 떴었다.

그러다보니 노조는 내가 마치 그들의 요구에 사사건건 시비나 붙고 자신들의 뜻을 가로막는 최악의 주범인 것처럼 각인되어있을 것이다.

이제 난 최전방에서 적장의 칼을 맞고 장열하게 전사할 판이다.

그러나 그동안 내가 P국장과의 협의 과정에서 보여준 우호적이고 협력적인 태도는 그도 인정할 것이다.

말도 안되는 요구에도 끝까지 들어주고 무언가 합리적인 대안을 마련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기억할 것이다.

하지만 돌이켜보건대 내가 힘들어하는 만큼 P국장도 나를 힘들어했을지 모른다.

그의 일방적인 편집적 성향 때문이다.

너무 일방적이어서 큰소리 안 내면서 그와 커뮤니케이션 하는 방법을 찾기가 무척 어렵다.

그는 자신의 주장만 있을 뿐 남의 이야기나 사정을 전혀 들으려하지 않는다.

자신의 생각과 다른 생각을 이야기하면 무조건 화를 내고 떼를 쓴다.

처장님은 고맙게도 당신께서 직접 KJY위원장을 만나겠다고 하신다.

그분도 내가 미워 한 때 나를 파내려고 안간힘을 쓰셨던 분이다.

나를 시한부로 데리고 있겠다고 하셨던 분인데 이젠 나를 붙잡아두기 위해 안간힘을 쓰시고 계신 거다.

그 배려가 너무 헌신적이어서 감동이 밀려온다.

전무님은 '그러면 처장님이 먼저 만나고 나중에 당신이 만나라'고 하신다.

나같은 사람이 살아남기 정말로 어려운 세상이다.

옳다는 것, 정의롭다는 것은 모두 쓰잘데기 없는 유치한 생각이고 오로지 곡학아세만이 진리임을 확인하는 순간이다.

완전히 뒤집힌 세상이다.

노조가 경영진 머리꼭대기에 앉아 경영진 머리채를 뒤흔들고 있는데 과연 그 결말이 어찌될지 두고보자.

아무리 공기업이라도 이 회사가 계속 이런 방향으로 가다가는 위태로운 것이다.

어찌되었거나 나는 몸조심 하면서 수면 아래로 깊숙이 잠수해 있어야 할 것 같다.

 

전무님은 간부회의에서 내린 결정이라며 또 내게 새로운 오더를 내렸다.

직원들 근무기강이 해이해져 있으니 문제 직원을 퇴출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란다.

여러 가지 방안이 있으나 지난번에 내가 검토했던 방안의 범주를 벗어나기는 어려울 것 같아 SH과장에게 이 안을 맡기기로 했다.

사무실로 들어와 과장들에게 전무방에서 있었던 이야기를 공유하였다.

KM과장 들으라고 노조관계 일에 내 이름을 함부로 잘못 팔지 말고 조심하라는 이야기를 덧붙였다.

내가 어쩌다 이지경 까지 갔는지 모르겠다.

과장들도 함께 힘들어했다.

말도 안 되는 발상이라며 어안이 벙벙해 있다.

만일 그런 일이 벌어진다면 이는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흥분했다.

그런 일은 발생해서도 안 되고 절대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고 과장들을 위안했다.

 

저녁엔 일상으로 돌아와 존경하는 나의 멘토 NJW 부장을 만난다.

KWS부처장과 KNS위원장, KYH부장, PNC부장이 모여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대현굴국밥집에서 굴보쌈을 먹으며 소주잔을 나누었다.

저녁 값은 PNC 원장이 내었다.

마침 PJH영업본부장님이 다른 손님들과 오셔서 함께 술을 나누었다.

P전무가 발렌타인 양주 한 병을 가져와 함께 마셨다.

술자리를 파하고 내가 택시를 잡아 노지점장을 모시고 집 근처에 내려드린 후 집으로 들어왔다.

아주 힘들고 긴 하루를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