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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7

20070310-11 집사람과 함께 한 섬진강 견지여행

by 굼벵이(조용욱) 2024. 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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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3.10~11

KWS부처장이 노조에게 피박살나는 나를 위로한다며 술 한 잔 하자고 해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시고 들어왔다.

집사람이 깨우는 바람에 새벽 4시에 일어나 섬진강 행을 강행했다.

 

섬진강은 이름만으로도 예쁘다.

한자 자전을 찾으니 두꺼비 蟾자에 나루 津자를 쓴다.

‘두꺼비 나루’라는 뜻인데 왜 그런 이름을 가졌는지 알 수 없지만 마음속으로 데자부를 느껴 그냥 포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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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5시 30분에 ‘여울과 견지’ 멤버 두 사람(막동이, 송09)을 우리 집에서 픽업해서 섬진강으로 향했다.

송09는 섬진강이 가고 싶어 우리 집 앞 찜질방에서 하룻밤을 보냈단다.

대단한 열혈 견지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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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사람이 먼 길 가는데 시간 아끼려면 김밥이라도 좀 싸가지고 가는 게 어떻겠냐고 집사람에게 제안을 했더니 밤새워 김밥을 싼 모양이다.

그냥 사가지고 가면 편한 것을 그래도 마음 속 생각이 그걸 받아들이지 않는 모양이다.

덕분에 집사람은 섬진강으로 가는 차 안에서 내내 졸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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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사문제로 힘들어하는 나를 위로해 준다며 선배가 술을 사주겠다고 해 따라갔다가 인사불성 직전에서 견지에 대한 열정으로 돌아와 잠을 청했지만 아직 술이 깨지 않은 상태였으므로 거의 음주운전 상태로 고속도로를 달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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꾸역꾸역 김밥을 우겨넣으니 그나마 술이 좀 깨는 것 같다.

장수 인터체인지를 나와 꼬불꼬불 산길을 지나며 초봄의 전령을 맞는다.

산과 들에 피어오르는 연초록 사이로 실개천이라도 흐르는 모습을 볼라치면 가슴이 벌렁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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쉴 새 없이 달리다 보니 어느덧 강물이 펼쳐진다.

파란 강물을 보면 마음이 편안해진다.

여울로 들어가는 길가에 매화가 반 쯤 개화를 했다.

터질 날을 기다리며 화려한 자태로 가지마다 탱글탱글한 망울들을 주렁주렁 달고 있다.

먼저 도착한 회원님들이 반갑게 우리를 맞는다.

가끔 여울에서도 만나지만 사이버 상에서 자주 만나니 이제는 이웃사촌 이상으로 가깝다.

나는 깊은 곳에서의 힘찬 물살을 견디기 어려워 맨 가장자리에 자리를 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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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황어란 고기는 처음 구경한다.

휘황찬란한 황색의 자태를 뽐내며 산란을 위해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에 내게 얼굴을 보이는 황어들은 하나같이 사랑에 눈이 멀어있다.

썰망 없이 달랑 덕이 만 달아 흘리는 낚시에도 사랑에 눈 먼 물고기들이 잘도 물려나온다.

도착하자마자 서너 시간 만에 열 댓 수는 한 것 같다.

그렇게 많은 물고기가 물려 나오리라곤 생각도 못했었다.

견지에 미친 이후 주말마다 임진강, 홍천강, 금강, 괴강, 여우섬, 이포대교, 늪실여울 하며 웬만한 강은 다 다녀보았지만 짧은 시간에 이렇게 많은 조과를 낸 적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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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에 구름과 계곡 선배님이 섬진강 이야기를 하며 자랑삼아 늘어놓으시는 이야기를 은근히 낚시꾼 뻥이 조금 들어갔겠지 하고 생각했었는데 내가 그걸 직접 경험하고 나니 조금 미안한 생각마저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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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하루 그렇게 신이 날 수가 없다.

여울에서 나오고 싶은 생각이 없다.

막동이님은 물고기를 잡으러 왔는지 막걸리를 잡으러 왔는지 덕이님이 준비한 막걸리 통을 끼고 앉아 아침부터 저녁까지 술타령이다.

그냥 여울과, 견지와, 그것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마냥 좋은지 잠깐 물에 몸을 담갔다간 내 입견지에 빠져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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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례 동아식당에서 저녁을 먹고(말이 저녁이지 술만 마시고 밥은 딱 한 숟가락 떴다.)

2차 노래방에서 이어지는 여견 식구들의 광란의 섹시댄스는 그동안 잊고 지냈던 내 야성을 불러일으킨다.

죽을힘을 다해 몸부림치며 내 손에 안긴 황어도 자기종족 번식이라는 신성한 소명을 다하기 위해 온몸을 파르르 떨며 자신을 방출하는 모습을 볼 때에도 내 가슴이 두근거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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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밤 나는 찜질방 생맥주집에서 파는 생맥주를 2000CC 사가지고 가 피아골 파크에서 황어의 떨림을 기억해 내며 원초적 본능을 불태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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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날 아침식사 후 이어진 견지에서도 내가 가는 곳 마다 엄청난 황어가 올라왔다.

어망에 담는 것을 포기하고 Catch and Release에 들어갔다.

마지막 한 수만 하고 나가자고 마음을 먹고 건 놈은 경쾌한 설장을 타는데 지금까지 잡은 황어 중 가장 큰놈이다.

눈대중이지만 50은 족히 넘어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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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쯤 되었을까 일찍 서울로 올라가자는 막동이님의 제안을 받아들여 서울로 향했다.

때늦은 서설이 풍어를 예언하며 하얗게 흩날리는 19번 국도를 달려 장수로 가는 길에 할머니와 중년의 아낙이 함께 운영하는 음식점에서 닭도리탕을 주문했다.

역시 전라도는 전라도다.

‘중’자라고 시킨 도리 탕 뚝배기가 작은 항아리만한데 가득 담긴 것이 닭 두 마리는 족히 들어가 있는 듯하다.

배고파서 이기도 하지만 맛도 괜찮아서 셋이서 더 이상 들어갈 수 없을 때까지 배를 채웠다.

영원한 술꾼 막동이님이 1병 가지고는 부족하다며 1병을 추가해 각 1병을 반주로 마시고는 집사람에게 운전대를 맡기고 자다 깨다를 반복하며 집으로 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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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년 후엔 산이 있고, 강이 있고, 나무와 꽃과 새들이 널브러진 아늑한 곳에 터를 잡아 제대로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했더니 막동이님이 술김에 되받아서 ‘막상 가까이 있으면 별 재미없으니 조금 떨어진 곳에 살다가 가끔 드라이브하는 즐거움과 곁들여 강을 찾으면 더 좋을 것’이란 제안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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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은 그렇게 不可近 不可遠하며 적당한 거리를 두고 사는 것이 좋다.

너무 가까이 있으면 상처받거나 타죽기 십상이고 너무 멀면 소외되거나 얼어 죽기 십상이다.

나처럼 예술 같은 노년을 꿈꾸는 환상가들이 그리는 삶이다.

그런 면에서는 견지가 취미로는 역시 최고라는 생각이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