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0421(화).
어제 아침 호신이가 제 방문 앞에 서서 날 기다리고 있다가 출근하는 내게
“아빠, 저 2만원만 주시면 안돼요?”한다.
부정어 대신 긍정어 사용을 수차 주문해도 도대체가 바뀌지 않는다.
제 어멈 어법을 그대로 따라하고 있는 것이다.
아무런 설명 없는 출근길 돈요구를 극도로 싫어해 수차 시정요구 했지만 아무것도 실현되지 않아 영 거슬린다.
나는 목 뒤로 솟구치는 울화를 삼키며
“미리미리 이야기 하고 절대로 출근길에 그런 이야기 하지 말라고 그랬지?”
“그런 이야기는 편한 시간에 합리적인 설명과 더불어 해”
하면서 문을 닫고 나가버렸다.
출근길 마음이 영 불편하다.
녀석이 괘씸하기 그지없지만 혹시 녀석에게 뭔가 급한 일이 생긴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남들은 등록금을 벌기 위해 죽자사자 노력하며 사는데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공부 대신 아르바이트 까지 하면서 그 수입을 제 용돈으로 쓰는 것도 모자라 아빠에게 손을 내미는 행태도 괘씸하기 그지없다.
사무실에 들어와 녀석에게 문자를 보냈다.
‘돈이 필요한 이유와 그 돈을 받아야할 당위성을 설명해주었으면 해(글로 표현해도 됨)’
하고 문자를 보냈더니 녀석에게서 곧바로 답신이 왔다.
‘하루에 소모되는 식비의 누적을 무시할 수 없고 생일에 학우들에게 제공한 식비가 어마어마하여 아르바이트 비로는 충당할 수가 없었기에 자금조달을 부탁드림’ 이라는 답신이 왔다.
문자 내용을 보니 글은 참 잘 썼다는 생각이 든다.
제 아비나 어미를 닮아서 글은 청산유수처럼 잘 써내려갔다.
이녀석이 조금만 노력하면 무언가 큰 일을 해낼 수가 있는데 청소년기의 끝없는 방황으로 청춘을 낭비하며 아직 자신의 정체성을 확립하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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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정년연장에 관한 보고서를 처장님께 보고하였다.
인사처장 부임 이전에 진행되어온 정년연장 관련 추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만큼 구체적인 진행사항을 제대로 알 필요도 있어 인력감축 목표 등을 감안해 데이터를 수정하여 정년연장에 관한 보고서를 재정비하라는 지시를 최차장에게 내렸었다.
최차장은 제때에 수정 보완하지 못하고 계속 미루고 있다가 마감 날에야 보고서를 가져왔는데 영 마음에 들지 않는다.
숫자가 바뀌었으면 바뀐 만큼 무엇인가 이에 따른 대책을 강구했어야 하는데 주어진 지시에 대한 이행은 철저하지만 자발적이고 창의적인 부분은 아직 서툴다.
이 친구를 회사의 거목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일하는 마음가짐부터 제대로 가르쳐주어야 할 것 같다.
한시퇴직 등의 변화와 2,420명의 조기 정원 감축을 감안할 때 정년연장이 가능한지 여부에 대하여 수치적으로 그 효과와 영향을 분석하라고 지시했다.
구체적인 방법론까지 설명해 주었다.
또 다른 건 하나는 기반기금센터에서 비정규직인 자산운용전문가의 계약기간을 1년간 연장해 달라는 요청에 대한 검토서를 가져왔는데 기안문에 단 두 줄을 적어 승인하는 서류를 가져왔다.
한숨이 저절로 나왔다.
그러지 말고 검토서를 만들어 기안문에 첨부해 가져오라고 했더니 이번에는 검토서 대신 공공기관 비정규직 운영에 관한 지침을 출력해 첨부하고는 기안문과 함께 가져와 얼렁뚱땅 넘어가려 했다.
검토서를 만들라고 다시 지시를 했더니 만들어온 검토서는 그냥 규정이나 지침의 내용만 적어 가지고 왔다.
화가 미리 끝까지 치밀어 올랐지만 심호흡으로 마음을 가라앉히고 그를 잘 달래서 재검토하라고 했다.
“사람은 커다란 바위나 언덕에 걸려 넘어지는 게 아니고 작은 돌부리에 걸려 넘어진다.
작은 것 조차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 사람은 절대로 큰일을 할 수가 없다”는 말과 함께 재검토를 지시했다.
아마도 서울대 출신 최차장이 자존심 상해하며 그런 내 끈질긴 요구와 지시에 기분나빠 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최차장의 성장을 위해서는 작은 것부터 하나 하나 가르쳐야 한다.
임청원부장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오늘 부서 식구들하고 저녁약속이 있단다.
오늘은 비가 내리는 덕분에 집에 일찍 귀가했다.
비가 내리지 않았다면 아마도 미자네 생맥주집에 들러 한바탕 수다를 떨다가 갔을지도 모른다.
너무 오랫동안 그녀 가게에 가보지 못했다.
그동안 전화 한 통도 해주지 못했다.
어렵게 만난 시골 초등 동창 친구에게 너무 소홀히 대하는 듯하다.
그런 내가 너무하다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집에 도착해 호신이에 대하여 집사람과 이야기를 나누었다.
녀석은 지난달에도 제 어멈한테 10만원을 빌려갔었단다.
갚으라고 해도 갚지 않는단다.
그녀석이 아르바이트로 버는 돈이 30만원 정도 된다고 한다.
그런데 제 분수를 모르고 제 친구들에게 술이나 밥을 사는 모양이다.
집사람이 아침에 먹다 남은 김치찌개와 통닭 세 조각으로 저녁상을 차려주었다.
통닭을 보는 순간 지난번 여울에 가서 먹다 남겨온 소주와 맥주 생각이 났다.
꺼내보니 소주가 두잔 남짓 남아있고 비록 김빠진 것이지만 맥주도 1/3정도 남아있다.
그걸 소맥으로 말았다.
통닭 두 쪽을 안주 겸 식사 삼아 먹은 후 밥 반 공기를 김치찌개에 말아 먹는 모습을 보던 집사람이 침을 삼키더니 내가 말아놓은 소맥을 홀짝거리며 몇 모금 마셨다.
오늘 아침 호신이에게 2만원을 주며
“네가 아르바이트를 통해 버는 돈이 얼마나?”
하고 물었다.
“30만원 좀 넘는 것 같은데요...”
“아르바이트를 왜 하냐?”
“..................”(답이 없다)
“다른 친구들은 등록금을 마련하기 위하여 치열하게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너는 네 용돈 마련하기 위해 하는데 그것도 모자라서 부모에게 돈을 달라고 하니?”
“............................”
“너 신불자 뜻이 뭔줄 알아?”
“네, 카드 같은 거 너무 써서 신용이 불량해 지는 거....”
“너는 지출에 맞추어 수입을 결정하느냐?”
“아니요”
“어떤 경우든 지출은 항상 수입보다 적어야 한다.
그리고 남는 차액을 미래를 위해 저축해야 하고.
그런데 수입보다 지출을 많이 하게 되면 그게 빚이 되어 신불자가 되는 거고 그런 습관을 가진 사람들은 항상 거리의 노숙자나 거지로 전락할 수밖에 없지”
“이번 한번만 구제금융 들어간다.
만일 다음번에도 같은 실수를 거듭할 때는 용서하지 않는다.
아빠가 냉철한 사람이라는 것 잘 알지?”
“네”
알량한 돈 2만원 주면서 대단한 훈시를 한다고 생각할지 모르지만 교육목적상 어쩔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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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군에서 고생하는 경신이에게 편지를 써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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