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10

20100217 누나의 상속재산 요구, 내 집터 증여 약속, 효희 돼지꿈과 성공신화, 교통사고

by 굼벵이(조용욱) 2024. 9. 26.
728x90

20100217

구정연휴를 보냈다.

그동안 여러 가지 사건 사고가 있었다.

12일엔 조인국 연수원장과 손영기 처장을 만나 뵙고 더 이상 연수원에 나오지 않는다며 마지막 인사를 드렸다.

내가 연수원에 있어봐야 TDR에 별로 도움을 주지 못할뿐더러 이리저리 눈치도 보여 차라리 내가 나타나지 않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 16,17,183일간 휴가를 낸 것이다.

어차피 27일까지 모두 써야 하는 휴가이므로 그냥 무의미하게 버리는 것 보다 사용하는 게 나을 것 같다는 판단에서다.

난 지금껏 연차휴가를 제대로 사용해본 적이 없다.

내 휴가를 찾아먹는 데에도 동료들에게 미안함과 죄의식을 가졌던게 지금까지 우리네 문화였다.

그날 저녁은 원래 현암 선배랑 같이 식사하기로 되어있었다.

하지만 전화를 드렸더니 그날 마침 손님이 왔다며 다음에 하는 게 좋겠다고 한다.

나도 차라리 잘 되었다.

그날이 내 귀빠진 날이었기 때문이다.

가족과 함께 조촐한 자리를 마련했다.

집사람은 유난히 조개를 좋아해 조개구이집을 찾았다.

호신이는 그날도 알바를 나가느라 참석을 못하고 경신이랑 셋이 조개구이에 소주를 두병 반 정도 마셨다.

내가 술을 남기는 일은 흔치 않은 데 그날은 반병을 남겼다.

집에 오니 경신이가 케익을 사다놓았다.

케익을 앞에 놓고 집사람과 경신이가 생일축하 오래를 불러주었다.

 

다음날은 아침에 테니스를 다녀올 생각이었으나 비가 오는 바람에 운동장 사정이 여의치 않아 그냥 집에서 영화를 즐겼다.

오후 네시경에 서울을 출발하니 명절 귀향길에 전혀 막힘이 없다.

지난 추석과 올 설날에 사장이 5만원 짜리 재래시장 상품권을 주었는데 마땅히 쓸만한 재래시장이 없어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안중시장에서도 그걸 사용할 수 있다고 해 안중시장을 찾았다.

거기에선 어디든 현금과 똑같이 취급되고 있었다.

이번에는 작은 집과 5촌 아저씨 댁을 찾으면서 귤 한 상자씩 들여놓았다.

전에는 돈을 5만원씩 넣어드렸는데 올해는 상품권으로 산 귤만 한 상자 넣어드렸다.

매년 받던 걸 못받아 조금 섭섭해 하실 지도 모른다.

 

원봉이와 정철이가 술을 나누다가 내게 전화를 했었다.

설 명절에 내려오면 시골에서 술 한 잔 하자는 약속을 했던 거다.

그러나 다른 친구들 반응도 시큰둥한 것 같고 명절 전야에 안중까지 차 끌고 나가 술 마시기도 불편한 데에다 형님과 긴히 나눌 이야기도 있어 정철이에게 전화를 걸어 서로 힘드니 나중에 보자고 하면서 혹 시간 나면 우리 집에 들르라고 했다.

 

형에게 작은 누나와 나눈 이야기를 했다.

우선 오해하지 말고 들으라고 하고 상속재산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현신이가 연수한답시고 미국 텍사스주립대에 가 큰누나 막내딸 제민이랑 함께 있으면서 치열한 공부 대신 방탕한 생활을 했고 그런 구체적인 사실들을 생생히 알고 있는 큰누나의 입장에서는 아버지가 누나들에겐 하나도 주지 않고 형에게만 물려준 그 많은 재산을 결국 현신이란 놈이 다 거덜 낼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을 이야기해 주었다.

그러기 전에 차라리 자신에게도 좀 나누어주는 것이 좋지 않겠냐는 생각을 가졌던 것 같다고 했다.

작은 누나도 말은 안해도 유산에 관해 욕심을 낼 것이라고 했다.

내 말을 들은 형이 조금 흥분하긴 했지만 나름 통 큰 양보와 배려의 마음도 가지고 있었다.

필요하면 주겠다고도 했다.

크게 욕심을 안 부리겠다는 이야기도 곁들였다.

하지만 큰누나의 그런 생각에 마음이 상해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형도 빨리 주민등록을 옮기고 내려와 영농 후계자 등록을 하라고 했다.

나도 몇 년 뒤 그렇게 할 것이라고 했다.

그래야 상속세 과세 면제금액을 2억 정도 감면받을 수 있다고 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2년 이상의 기간동안 영농에 종사한다는 증명을 해야 하므로 빠를수록 좋다고 했다.

형은 나보고 어디에 살 것이냐고 해서 장자골 성재 살고 있는 곳에 가서 살 생각이라고 했다.

형은 그러지 말고 텃밭 앞 대지에 지으라고 하며 집 지을 터 200평을 내 주겠다고 했다.

 

다음날은 제사를 지냈다.

SY는 역시 정치꾼이다.

종손도 아니면서 마치 종손인 양  할말이 있다며 스스로 일어나 용구형 형수의 이야기를 받아 봄에 여자들이 나들이를 갈 수 있도록 모든 걸 종중에서 지원해 주겠다며 큰소리를 쳤다.

나나 형이나 그런 그에게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추하지 않게 곱게 늙을 일이다.

사당에서 나와 형과 아이들을 태워 납골 묘를 다녀왔다.

아이들에게 납골묘 성묘에 대한 의미를 제대로 알려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서울에 올라갈 채비를 하는데 효희가 왔다.

효희가 자신의 성공담을 이야기 한다.

그는 정말 입담이 좋다.

아마도 자신의 아버지를 닮은 듯하다.

그가 결혼하고 의정부에서 집장사 쫓아다니며 백수건달 생활을 할 때 이야기다.

땡전 한 푼 없는 터라 해산을 위해 집사람을 시골집으로 보냈단다.

하루는 이런 꿈을 꾸었단다.

집 앞에 있는 논 건너편 자기네 산에 갔더니 밤이 수북이 쌓여있더란다.

그걸 주워 오다 논둑길 건너며 아래 도랑을 내려보니 돼지새끼가 여덟 마리나 우글거리더란다.

그래서 그놈들을 안고 집에 들어오는 꿈을 꾸었단다.

그래 복권을 사려 했지만 돈이 달랑 천 원짜리 한 장 밖에 없어 그냥 있었는데 자신이 출입하는 복덕방에서 나오라는 전화가 왔단다.

복덕방 사무실에서 가보니 집장사들이 몰려와 있는데 마침 고스톱 판이 벌어졌단다.

그는 허풍에 건달 기질도 있어 어릴 때에도 자라며 동네에서 노름도 하고 각종 사고도 많이 쳤었다.

달랑 천 원짜리 한 장을 가지고 노름판에 끼어들었는데 처음부터 연거푸 붙기 시작하더란다.

그러면서 점점 판이 커지기 시작했고 고스톱에서 짓고땡으로 돌아가 판돈이 불어나면서 결국 1350만원을 따게 되었다.

그 당시는 전화를 사고팔던 시기였고 값이 꽤 나갔는데 그 중 한 사람이 자신의 전화를 100만원에 내걸고 노름에 참가했는데 그것까지 몽땅 따 결국 1450만원을 땄단다.

그 돈으로 고기 집에서 밥 한번 근사하게 사는데 20만원 정도 들었고 자신을 돌봐줄 수 있는 사람에게 100만원을 주었다고 한다.

그게 기반이 되어 집장사 시장에 본격적으로 뛰어들었고 사업이 번창하면서 백억대 갑부로 급성장한 것이다.

그러면서 집장사에서 손을 떼고 형 충희의 영향을 받아 통신사업 쪽으로 방향을 선회하게 되었단다.

그런데 또 이 통신사업이 붐을 일으키면서 지금의 자신으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그가 살아온 이야기는 소설로 써도 빅히트를 칠만하다.

소문난 개망나니가 어느 날 돼지 여덟마리를 안고 들어오는 꿈을 꾸면서 대한민국 1%반열의 갑부로 성장하게 된 것이다.

************************

 

효희 성공신화를 듣느라 시간을 많이 지체해 처가로 향하는 길이 늦어졌다.

네 시 경에 출발하다보니 차가 어찌나 막히던지 60키로 밖에 안 떨어진 처가에 가는데 네 시간이나 걸렸다.

 

장인어른과 둘이 반렌타인 양주를 거의 한 병을 다 마신 것 같다.

장모님 말씀에 의하면 장인어른이 나랑 술 마시는 것을 엄청 좋아하신단다.

그리고 내가 처가 식구들과 다른 장점을 가지고 있는데 대인관계가 좋다는 것이다.

 

다음날은 장모님이 갑자기 윷놀이를 하자고 했다.

조금 어색했지만 그래도 일단 시작하니 할 만 했다.

처가에서 점심까지 잘 얻어먹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날 아침에 낚시 여행을 떠났다.

길 막힘도 없이 잘 가던 차에 이천을 막 벗어나는 지점에서 신호등이 갑자기 노란 불이 들어왔고 나는 급하게 브레이크를 밟아 차를 세웠다.

그리고 습관적으로 백미러를 바라보는 순간 하얀색 EF 소나타가 나타나는가 싶더니 !”하는 굉음을 내면서 내 차를 들이받았다.

순간 아찔했다.

나는 앞 차 운전자가 나타나기 전까지 문을 열지 않았다.

그가 나타나 내가 괜찮은지를 물었다.

나는 핸드폰으로 사고현장을 촬영했다.

동영상도 찍었다.

내 차를 박은 차는 내 차 속으로 앞부분이 완전히 처박혀 들어가 거의 폐차 수준으로 망가졌다.

잠시 후 상대편 보험사가 나타나 사고 접수를 하고 접수번호가 적힌 명함을 주었다.

그는 100% 자신의 과실을 인정했다.

현장에 레카 차가 몰려들고 차를 견인해 가려고 했다.

나는 문방내와 통화를 했는데 문사장도 별로 쓸만한 정보를 주지 못했다.

그냥 나보고 적의 판단하라는 것이다.

주변에 나타난 사람들은 내 차를 끌고 가서 수리하려 했고 수리하는 동안 렌트카를 쓰면 된다고 했다.

내가 보기에 자동차는 뒷부분만 엉망이 되었지 엔진이 달린 앞부분은 손상이 전혀 없어 움직이는데 별 문제가 없어보였다.

나는 그들을 말렸고 차를 끌고 천천히 서울로 올라가기로 했다.

김동엽씨에게 전화를 거니 김동엽씨도 그렇다면 그냥 회사로 끌고 오라고 한다.

먼저 집에 들러 자동차에 들어있는 짐들을 정리한 후 다시 회사로 가져갔다.

김동엽씨가 송도 자동차에 연락을 했고 송도의 최창순 상무가 금방 나타나 그와 함께 공업사로 가던 중 그는 먼저 병원에 들러야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교통사고 전문 병원인 서울 연합의원으로 나를 안내했고 병원 관리과장인 박현수는 이쪽 분야의 전문가였다.

병원은 허름해 보였다.

입원실엔 설 연휴 끝이라 그런지 나이롱 환자 한 두 사람만 서성대고 있었다.

그는 목과 허리 사진을 찍고 의사의 소견을 들었는데 큰 문제는 없어보이는데 꼬리뼈 부분이 남들과 다르다며 통증이 있는지를 물었다.

별로 통증이 없었기에 괜찮다고 했다.

(아마 이게 협착증의 원인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2년 경과 후부터 허리 통증이 시작되었기 때문이다)

박현수는 합의서까지 자신이 직접 작성했고 내게 그가 지시하는 위치에 사인만 하도록 했다.

나는 그 내용이 어떻게 처리되는지도 모르고 백지상태로 합의서를 위임한 것이다.

그 사이 송도 최창순 상무는 렌트카에 연락을 해서 병원 앞에 렌트카를 대기시켜 놓았다.

렌트카를 타고 온 친구는 최창순 상무 동생이라고 하는데 달리는 차 안에서 잠시 정차하는 동안마다 서류를 작성하고 내게 정해진 위치에 사인을 하도록 했다.

렌트카는 어떤 조건으로 어떻게 계약이 되었는지 알 수도 없다.

그는 사람 정신을쏙 빼놓는다.

혼자 시키지도 않은 말을 계속 이어가면서 달리는 차안에서 일을 본다.

멀티 태스킹의 대가다.

그리고는 주유소에 들러서 세차를 하고(세차비는 자신이 내었다) 55천원어치 가스 까지 주유했다.

(가스비는 내가 내도록 했다)

다시 송도자동차 공업사에 들러 내 차에 붙어있던 내비게이션을 떼어다가 렌트카에 달았다.

집에 와 잠시 있다보니 현대해상에서 전화가 와 병원에 갔는지 여부를 묻기에 박현수 과장이 가르쳐 준대로 서울 연합의원 506호에 입원해 있는 있다고 했다.

이 사실을 알리기 위해 박현수 과장에게 전화를 했더니 박과장은 지금 일을 보고 있다며 잠시 후 다시 연락하겠다고 하더니 잠시 후 내게 전화를 해서 100만원에 합의했는데 아마 110만원을 입금할거라며 10만원은 수고한 최창순 상무에게 주면 될 거라고 했다.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거짓말처럼 현대해상에서 110만원이 입금처리 되었다는 문자가 왔다.

최창순 상무에게 돈을 주기 위해 구좌번호를 물으려 전화를 했더니 그는 그냥 만나서 현금으로 달란다.

송금을 하면 현금이 오가는 것이 기록으로 남기 때문인 것 같다.

이런 과정들이 조직적으로 먹이사슬을 만들면서 보험사까지 모두 연결되어있다는 결론을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최창순은 자동차 수리에 이문을 남길 것이며 부가적으로 나로부터 10만원의 수고비를 받을 것이고 병원은 며칠동안의 입원비와 치료비를 챙길 것이며 자동차 렌트 회사는 내게는 별로 소용없는 차를 빌려주며 장기간 렌트비를 챙길 것이다.

송도 최상무는 부속품이 없다면서 월요일쯤에 찾아가라고 했다.

잘은 모르지만 어림 짐작에 기간을 최대한 장기화 시키려는 전략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교통사고 보험금을 놓고 먹이사슬이 이처럼 삼단계로 연결되어있다는 알 수 있었다.

그들은 보험금을 타내기 위해 조직적으로 움직이는 듯하다.

피해 당사자는 그게 옳은 지 그른지도 모르고 하라는 대로 사인만 열심히 하면 된다.

어쨌거나 살아 숨쉬고 있는 것 만으로도 천만 다행인데 합의금조로 100만원의 공돈이 생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