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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지혜를 찾아서/인문학 산책

남자란 무엇인가(안경환)

by 굼벵이(조용욱) 2017. 8.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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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라노스, 크로노스, 제우스로 이어지는 살부의 신화는 불행하게도 현대인의 내면에서 반복된다.

자식의 입장은 오로지 자신에게 유리할 경우에만 아비의 후광을 이용할 뿐이다.

섣불리 남을 믿고 권력을 내주었다가는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혀 자신이 제거되기 십상이다.

이는 자식이라 해서 예외가 아니다.

금화가 소리를 내면 욕설은 침묵한다.

돈으로 열리지 않는 문은 없다(유대 격언)

우리나라 사람들의 거짓말은 자신의 방어 때문이 아니라

주로 남을 모함하기 위해서 한다는 데 문제가 있다.

어느 사법통계를 보면 우리나라에는 위증죄와 무고죄가 이례적으로 많다.

심지어 이웃 일본의 수십배에 달한다는 비교도 있다.

특히 영국과 미국에서는 위증죄가 매우 중한 범죄로 인식된다.

심지어 형사피고인도 묵비권을 포기하고 선서한 후에 거짓증언을 하는 경우 위증죄의 책임을 진다.

정당한 사법절차를 방해했기 때문이다.

부부사이에서 사랑의 본질은 다름 아닌 관성과 체념이다.

너무 오랫동안 아상적인 로맨스에 매달리는 여성들은 불행한 결말을 맞는 경우가 많다.

자살을 하느니 차라리 섹스로 외로움을 달래는 편이 낫다.

결혼생활을 절대적 가치로 삼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충실한 결혼생활을 이끌 수 있다.

독신으로도 잘 살 수 있는 사람이 결혼생활도 성공할 수 있다, 

결혼생활도 단체고 단체는 구성원 사이의 신뢰를 바탕으로 하는 공동체이다.

사랑은 감정의 문제지만 데이트는 돈의 문제다.

남자에게 연애는 섹스의 목적이고 여자에게 섹스는 더 깊은 관계로 나아가기 위한 방편이다.

옛날에는 가리기 위해 입었던 옷을 지금은 노출하기 위해 입는다는 자각으로 바뀌었다.

선진사회란 유혹에 기초를 둔 사회이며 사회를 유혹하여 자신을 증명해 보이는 사회다.

수컷들의 성관계를 파탄낸 건 문명화다.

성적 본능은 이렇다할 이성의 방해를 받지 않았었다.

마침내 고전철학과 유대교, 기독교 윤리가 대중에 침투되면서 오늘날의 습속이 되었다.

결국 수많은 성관계를 파탄으로 몰고간 것이 바로 문명이다.

인간의 친절과 도덕적 교양을 존중하고 인권을 중시하는 우리의 문명이 야만의 주범이라니 실로 아이러니라 아니할 수 없다.

난교는 남성의 생래적 특성이다.

오래 사귄 여성이 남성의 성적실험을 경멸하며 완강하게 거부하면 헤어질 가능성이 높다.

유대인종은 전 세계에 분포하고 있는 보편성 때문에 필연적으로 평화주의자이자 국제주의자이다.

평화주의는 생존을 위한 싸움에서는 항복을 의미하므로 최악의 죄이다.

그러므로 어느 국가든 첫번째 임무는 대중을 모두 국가주의자로 만드는 것이다.

일본인의 친절이 우월감의 소산이라면 우리의 불친절은 열등감의 소산일지 모른다.

일본인에게 외국인은 자기들보다 우월하거나 열등한 존재이지 대등한 관계는 드물다.

인간을 전체 인류애적 입장에서 이해할 줄 모르는 태도나 형제자매로 이해할 능력이 부족한 일본인들이 진정한 세계인으로 발돋움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중국이 민족주의를 내세우면 세계에 재앙이 닥친다.

세계가 중국을 두려워하는 이유다.

모병제는 군대를 양질의 직장으로 만들어 헬조선을 부르짖는 자조와 실의에 빠진 젊은이들의 삶에 획기적인 전기를 마련해줄 것이다.

군복무 중에 쌓은 경력을 전역 후에도 자산이 되도록 하려면 모병제로 전환해야 한다.

모든 종교의 가르침은 동일하다.

즉 다른 사람의 지킴이가 되라는 것이다.

사회적 약자를 보살피라는 것이다.

프로이트는 신이 존재하지 않으며 종교란 인류의 보편적 강박증의 표현이라고 단정했다.

남자들의 정신은 원래는 원주민 여성의 벗은 몸을 보고도 별반 성욕을 느끼지 않도록 설계되어 있지만 포르노 앞에서는 통제불능이 되는 구조적 결함이 있다.

무엇보다도 의식적으로 삶의 속도를 늦추는 연습을 해야 한다.

자본주의가 바뀌지 않는 한 기후문제는 절대로 바뀌지 않는다.

암컷에게 수컷은 종족번식을 위한 수단일 뿐이다.

소모품인거다.

일본여성이 원하는 편안하고 소통 잘하는 남자, 유럽 여자들이 원하는 기사도 정신으로 무장한 남자, 미국여자들이 원하는 동등하게 존중해주는 남자...그런데 한국여자들은 이 모두를 함께 원한다.

자살은 공격적 성향이 자신에게로 분출된 것이다.

특히 노년의 우울증은 유전적 요인이 상당히 작용한다.

헤밍웨이 집안의 경우 무려 다섯명이나 자살했다.

실은 잘 우는 남자가 더욱 여자의 사랑을 받는다.

다만 결정적인 상황에서는 우는 남자를 떠난다.

대단히 사려깊고 용기있는 남자만이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자살율이 높은 나라다. OECD국가중 13년째 최고기록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청소년과 노인의 비율이 높은데 청년은 과도한 스트레스로, 노인은 궁핍과 고독으로 자살한다.

인간은 누구나 장애인으로 태어나서 장애인으로 생을 마감한다.

시인 고은은 근래들어 우리나라에 좋은 시인이 나오지 않는 이유가 시인들이 술을 마시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호모 임비벤스라는 말이 있다(homo imbibens) 술마시는 인간이란 뜻이다.

인간의 성기는 한번 발기하면 자신의 몸에 비해 여타 영장류보다 길고 두껍다.

종교는 죽음을 건 내기다.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 만들어낸 마취제요 환각제다.

프랑스인들은 성행위의 마지막 순간인 오르가즘을 작은 죽음이라 부른다.

에로티시즘은 작은 죽은 즉 언젠가는 다가올 진짜 죽음에 대한 연습이다.

그래서 절정상태에서 죽여달라는 외침이 터져나온다고 한다.

그런 연결이 인간의 삶과 죽음을 이어주는 핵심적인 연결고리임을 주장한다.

죽음의 본능은 유기물이 자신의 내적 긴장을 소멸시키고 무기물인 원상태로 돌아가려는 본능이다.

쾌락은 긴장과 소멸의 정점이다.

죽음이 아니고서야 그 무엇일까?

성공한 남자란 몸 전체에서 밝은 빛을 발하는 사람이다.

조용한 동작 하나하나에서 밝은 빛이 새어나오는 그런 사람이다. (시오노나나미)

한국남자의 일생에 생길 수 있는 3대 재앙은 소년등과 중년상처,노년궁핍이라고 한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응시가 사악한 이유는 그것이 욕망하는 대상을 향하고 있기 때문이다. (자크 라캉)

모든 응시는 본질적으로 사악하다.

중년이 되면 더이상 섹스를 통해 남성다움을 인정받으려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휘몰아치는 섹스가 아니라 편안한 친밀감이 필요하다.

심청이가 갔다는 용궁은 남경의 매춘부집이다.

과년한 딸이 홀아비와 살 수 없어 근친상간을 피하기 위해 집을 떠난 것이다.

성욕을 품위있게 유지하고 다스리는 것이 늙은 남자의 지혜의 요체일 것이다.

신체 어디가 얼마나 아프든 절대 섹스 생각을 버려선 안 된다.

영화나 동영상을 통해서라도 끈을 유지해야 한다.

비참할 때 행복한 시절을 회상하는 것보다 더 큰 고통은 없다.

더이상 사랑하지도 헤매지도 않는다면 그런 사람을 기다리고 있는 것은 죽음 뿐이라던 괴테는 1823년 74세에 19세 소녀와 사랑에 빠졌다.

백발이나 주름살로도 갑자기 권위를 만들 수는 없다.

권위란 명예롭게 보낸 지난 세월의 마지막 결산이다.

사람은 누구나 과도기를 사는 낀 세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