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는 인연이 다하면 소멸할 뿐이다
세상의 모든것은 예외 없이 바람소리와 같이 연기한 것이다
나 자신도 연기한것이요 기쁨과 슬픔도 태어남과 죽음도 모두 연기한 것이다
물질적 정신적인 무엇 가운데 연기하지 않은것은 하나도
없다
왜 무상한가에 대한 답을 굳이 찾는다면 모든것은 연기하기 때문이다
조건이 지속되는 한도 내에서만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임종을 하루 앞둔 마조 선사에게 병의 상태가 어떤지 물었다
마조 선사는 태연하게 일면불 월면불이라 대답했다
1800년을 살아도 부처고 하루만 살아도 부처라는 뜻이다
장수하면 장수하는 대로 좋고 단명하면 단명하는 대로 좋다
물자체도 조건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며 조건이 다 하면 소멸한다
모두가 다 가지고 있는 이 자유로운 초월성 이것을 불성이라 한다
공은 모든 사물에 자성이
없다는 뜻이다
자성이랑 다른것에 의존하지 않고 스스로 존재하면서
어떤 조건에서도 변하지 않고 영원한것을 말한다
연기는 조건에 의존한 성립을 의미한다
반면에 자성은 조건을 필요치 않는 자립적성립을 뜻한다
연기와 자성은 양자택일의 관계이므로 연기가 진실이면 자성은 부정될 수밖에 없다
모든것은 연기 한다 이것은 모든것은 무자성이라는 것이며
이 무자성을 공이라 하므로 모든것은 공이다
연기는 무자성이요 공인 것이다
무상의 폭풍이 몰아치는 이 현실을 떠나 열반은 없다
이 현실의 실상을 바르게 아는것이야말로
열반이라고 한것이다
무상한 현실을 바르게 아는것이 열반이다
지혜의 힘에 의해서만 번뇌는 나와 결합하지 않는다
번뇌는 실제로는 없다
숏다리때문에 나는 이렇게 될수밖에 없다는 생각은 자성에 근거한 사고방식이요 어리석은 생각이다
해탈은 어떠한 구속도 없는 대자유의 경지를 말한다
문제삼지 않으면 번뇌는 없다
순간 순간을 진실되게
사는것이야말로 인생 최고의 덕목이다
아무런 잡생각과 욕심 없이 인연따라 해야할 그것에만 몰두하는
반찬 준비와 빨래가 바로 공즉시색의
세계요 평상심 즉 도인 것이다
색즉시공의 과정을 거치지 않고는 공즉시색을 자기것으로 만들 수 없다
과거의 내가 죽지 않고는 만물은 진실한
모습으로 되살아나지 못한다
내 안에서 벌어지는 이 일들을 순간순간 아무런 조작 없이 여실지견 즉 있는 그대로 꿰뚫어 보라
우리는 진리의
숭배자가 아니라 쓸 데 없는 생각과 집착의 숭배자라는것을 뼈저리게 알 것이다
사바는 산스크리스트어의 음역이다 인내를 뜻한다
따라서
사바세계는 참고 살아가야 하는 세상이라는 뜻이다
사후에 육체는 소멸하지만 심장의 내부에 있는 아트만은 영원히 소멸하지 않는다
임종이 다가왔을 때 업을 부착한 아트만은 현재의 몸을 빠져나와 그 업에 맞는
새로운 몸을 취해 윤회한다.
윤회의 종식인 해탈은 어떻게 가능할까 아트만을 직관하여
최고 실재인 브라흐만 그자체가 되면 된다
원래부터 브라흐만과 아트만은 동일한 것이었다
이것을 범아일여라고 한다
모든 욕망을 남김없이 버리고 명상에 의해 정신을 통일하여
아트만의 본질에 전념하는자는 진실한 아트만을 직관한다
브라만과 아트만은 같다는 범아일여의 가르침을 깨닫는 것이다.
불교는 영원불멸의 아트만에 대해 부정적인 입장을 취해 왔다
윤회란 이전 생의 정신과 육체를 원인으로 하여 또 다른 정신과 육체의 결과가 생긴다고 하는
태어남의 반복을 뜻하지만 이 생에서 저생으로 옮겨 가는것은 티끌만큼도 없다
인과관계에 의한 새로운 정신과 육체의 이어짐은 있으나 아트만과 같이
다음 생으로 변함없이 영속하는 연속
체는 없다는 말이다
윤회는 마치 이등불에서 저등불로 불이 옮겨 붙는것과 같다
공의 진리 그대로 사는
도인은 산을 보면 산이 되고 물을 보면 물이 된다
살 때는 철저히 살고 죽을때는 철저히 죽는다
집착이 없어 순간순간 눈 앞의 그것과 하나가 되지만
그것에 물들거나 머물지 않으며 불변의 나와 사물이 있다는 생각은 추호도 없다
중생인 나에게서 너는 항상 내 안경을 통해서 들어온 너다
너를본다는것은 곧 나를 본다는 것이다
성인 남성이 평균 세포 수는 약 60조 개라 한다
이 세포들은 약 3개월이 지나면 모두
새로운 세포를로 대체된다고 한다
따라서 이전의 내 몸 정신과 현재의 그것을 같다고도 할 수 없고
다르다고도 할 수 없는 불일불이의
관계 있다
인과관계에 의해 순간 순간 생멸하면서 이어져 가는 육체와 정신
그것은 하나의 흐름 내지 궤적을 그린다
찰나적으로 생겨났다가 소멸하는 점들이 연쇄에 의해 그려지는 궤적,
이 궤적 위 이 점들이 바로 육체와 정신이며 그것을 우리는
나라는 동일한 이름으로 부르고
있을 뿐이다
나의 삶을 결정 짓는것은 무엇일까 그것은 신업 구업 의업의 삼업이다.
내가 하는 몸짓 하나 말 한마디 생각 한 자락에 의해 내 삶의 고락이 결정된다는 것이다
그러니 어찌 매 순간 자신의 행동과 말과 생각에 개의치 않을 수 있겠는가
불교는 모든
괴로움의 근본 원인은 갈애와 무명에 있다고 본다
갈애란 만족할 줄 모르는 욕망을 말하고 무명은 진리에 대한 어리석음을 뜻한다
갈애와 무명을 달리 표현한것이 탐진치 삼독이다
탐과 진은 갈애의 다른표현이고 치는 무명의의 다른 표현이다
개개별 해탈이라는 말이 있다
하나하나의 일마다 해탈한다는 뜻이다
보았으면 본것에서 해탈하고 만났으면 만난것에서 해탈한다
내가 뭔가를 쫓는 사냥꾼인 한 있는그대로는 보이지
않는다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이란 내가 없이 보는 것이오 관찰자 없이 관찰하는 것이다
마음은 조건이 갖추어 졌을 때
생겨났다가 조건이 다하면 소멸하는
연기적 존재요 찰라적 존재다
반짝 빛났다가 다음 순간 소멸하는 빛과 같다
찰나적으로 생했다가 멸함에도 불구하고 하나의 고정된 마음이
지속적으로 이어지고 있다고 오해하는 까닭은 무엇일까
예불문에 나오는 지심귀명례에서 지심은 지극한 마음이고
귀명은 목숨을 다해 그 하나만을 좋아한다는 뜻이다
지심귀명으로 예불한 에너지가 내 몸을 만들고 내 주위를 만들고
이 세상을 만드는데 눈에 보이지 않는
큰일을 한다.
식은 마음을 뜻하는 불교 용어다
취사선택만 하지 않으면, 싫어 하고 좋아하지만 않으면,
깨달음과 해탈은 그 자리에서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역으로 말하면 중생은 좋고 싫은것을 가려서 좋아하는것은 늘 잡으려하고
싫은것은 항상 멀리 하려고
하기때문에 괴로움의 바다에서 헤맨다는 뜻이다
모든것은 내 마음에 의해 그려진 허구의 그림일 뿐이다
이를 유식무경이라는데 내 마음의 외부에 어떠한 존재도 실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무경이고
오직 그러한 모습으로 마음이 나타나
마음 스스로에 의해 그렇게 인식되는 것일
뿐이라는것이 유식이다
연기, 공, 유식 그대로 살자고 하는것이 선이다
불교에서 제일 중시하는것이 지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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