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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생활의 역사(용욱이의 내면세계)/2005

20050519 엄마, 아직도 섭섭해? 엄마의 보험이 나였는데도?

by 굼벵이(조용욱) 2023. 4.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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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5.19(목)

아침부터 J처장이 보고서를 펼치더니 화를 낸다.

나와 상의 없이 처장에게 가져다 준  KS과장의 보고서가 처장이 생각하는 방향과 많이 달랐던 거다.

나는 그런 정황들을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처장은 내게 경영혁신 진단과 관련한 업무지시까지 내린다.

명백히 직제규정상 내가 해야할 업무 범위가 아니다.

이런 골치 아프고 영양가 없는 일은 언제나 내게 맡겨진다.

생색내는 일은 각 팀이 서로 차지하려고 아귀다툼하는 꼬라지와 극적으로 대비되는 현상이다.

그런 피해의식 때문에 속이 끓어올랐다.

관리자는 아랫사람에게 불평불만을 함부로 이야기하면 안된다.

나도 모르게 분을 참지 못하고 과장들 앞에서 불평을 이야기했다.

내가 맡은 일은 결국 누군가 과장들이 도맡아 해야할 일이기에 불만을 공유한 셈이다.

YW과장에게 경영혁신 진단과 관련된 일을 맡기었다.

Y과장이 다행히 적극적으로 이를 맡아 하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J처장은 내게 겨우 과장 한사람 더 보강해 주고는 생색내며 골치 아프고 복잡한 일들을 몽땅 내게 맡기려 한다.

어제 마신 술로 몸이 별로 좋지 않은데 오늘까지는 보고서를 마쳐야 했으므로 늦은 시간까지 야근을 하고 차를 몰아 집으로 가던 중 강남사거리 쯤에서 형님 전화를 받았다.

형이 조합장으로 있는 직장주택조합과 관련하여 무언가 태풍이 몰아닥친 모양이다.

그동안은 참고인 자격으로 조사를 받아 왔는데 이제는 피의자 신분으로 집중 조사를 받는단다.

구속될 경우 형은 사표를 낼 생각 까지 하고 있었다.

자신이 구속될 경우를 대비해 내게 후사를 부탁했다.

엄마 명의로 돈을 융자한 모양인데 내게 그걸 처리해 줄 것을 부탁했다.

변호사 선임도 부탁했다.

어찌될지 모르지만 그렇게 되지 않기만을 기도할 뿐이다.

그는 건강이 안 좋은 형수 걱정을 많이 하고 있었다.

 

(돌아보면 형이 아우를 돌보는 게 아니고 평생 형을 내가 돌봐야 했던 듯하다.

아직도 가야할 길이 까마득하다.

병원으로 가기 위해 차를 타고 시골집을 떠나시던 엄마가 이 길이 죽음길인 것을 인지하신 듯 내게 하신 말씀이 생각난다.

'네 형을 부탁해.'

애들도 있는데 왜 엄마는 내게 형을 부탁한다고 했을까.

머리 좋은 엄마는 다 알고 계신거다.

형이 왜 그리되었는지, 형 상태가 어떤지, 형이 그렇게 된 데에 자신에게 얼마나 큰 책임이 있었는지...

돌아보니 그래도 자식이라고 당신 뱃속으로 낳은 나밖에 안 보였던 거다.

무뚝뚝하고 인정머리 없는 나를 엄만 싫어하셨지만 나는 내가 무너지면 연쇄적으로 무너진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내가 인정머리 없는 것은 당신이 제대로 정을 주지 않고 키운 탓이다.

하지만 난 개념 없는 낭비를 인정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필요한 때에 필요한 도움을 주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할 뿐이다.

나는 엄마가 부리는 허세 앞에 앵벌이가 되기를 거부했었다.

엄마에게 받은 게 없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정마저 소홀했고 오히려 배척당하는 기분만 느꼈었다.

그래도 엄마의 죽음 뒤에 대차대조표를 따져보니 결과적으로 인정머리 없는 나 혼자만 마지막까지 엄마의 짐을 걺어진 채 앵벌이 역할을 해내고 있었다.

엄만 하늘에서 무뚝뚝하고 인정머리 없는 내게 아직도 섭섭한 감정을 가지고 있을까?

엄마의 보험이 나였는데도?

삶은 참 개미가 걷는 길만큼 복잡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