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텃밭 가에 아주 오래된 감나무가 한그루 있다.
마을사람들은 그걸 속소리감나무라고 부른다.
그 이름의 유래는 알 수 없지만 예나 지금이나 그렇게 부른다.
감의 크기는 일반 감의 절반 만하다.
덜익은 땡감을 베어물면 못견딜만큼 떫지만 연시가 되면 이 감의 당도를 추월할 수 있는 것은 세상에 없다.
내 유년시절 내내 그 나무와 더불어 살았다.
밤 새 떨어진 감꽃을 주우려 새벽잠을 설치기도 했다.
자랑삼아 실에 꿰어 벽에 주렁주렁 걸어놓은 적도 있다.
휠체어에 의존해 간신히 회관에 봄나들이 나오신 아랫집 할배(낼모레 백세) 말씀에 의하면 그분의 할아버지 시절에도 지금의 자태였으며 가장 오래된 나무였고 거기서 똑같이 감꽃을 주우셨단다.
지금은 아무도 그 꽃을 줍지 않는다.
길 위에 소복히 쌓여 똥색으로 지저분하게 변색되어 가고 있다.
감을 줍는 이도 따는 이도 없어 늦가을엔 저절로 물지똥 같은 감을 길바닥에 팽개친다.
어쨌거나 우리 마을에서 가장 오래 살아온 터줏대감 어른인데 이젠 천덕꾸러기가 되었다.
꼰대가 된다는 게 이런 게 아닐까?
올해도 고목은 예외 없이 다닥다닥 꽃을 피웠다.
하지만 그 꽃 주우며 같이 놀던 사람들은 꽃 대신 돈을 좇아 마음마저 떠났다.
모두 만수무강 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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