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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무들기 농장

머리에 벼슬만 이고 사는 닭

by 굼벵이(조용욱) 2023. 12.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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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27일 오전 1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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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아침 공복에 생란을 한두알 먹는다.
작은 접시에 유정란을 깨어 넣고 맛소금 살살 뿌린 뒤 참기름을 몇방울 떨군다.
참기름의 고소한 맛이 물크덩거리며 비릿한 생달걀 냄새를 가려주기 때문이다.
혈관 건강과 콜레스테롤 조절에도 효과가 있고 루테인 지아잔틴이 풍부해 눈 건강에도 좋단다.
그동안 하루에 두세알씩 서너달은 족히 먹었다.
금년에 쥐, 고양이와 전쟁을 벌여 살려낸 병아리가 일곱마리나 닭이 되었는데 아직 알을 못나 늙은 암탉들이 낳은 알 두세개를 생란으로 먹는 거다.
이렇게 키우는 닭은 사료값으로 계산하면 사실 적자다.
대규모농이 아니면 농사는 모두 적자를 면할 수 없는게 농촌 현실이다.
하지만 온갖 음식물 쓰레기는 이놈들이 전담해 처리해 준다.
더군다나 모이를 한주먹 들고 닭장에 들어가면 우루루 몰려들어 내 손에 든 모이를 쪼아먹는 재미는 덤이다.
잘 만 길들이면 애완견이나 애완묘에 버금갈만큼 애완계 역할을 해준다.
놈들은 여중 2년생과 비슷해 경계심이 많고 우루루 몰려다니며 예민하기 그지없고 천방지축으로 날뛰어 놈들과 친해지기 쉽지 않다.
하지만 사람이나 동물이나 먹는 것에는 약하다.
길들여진다는 건 자유 대신 구속을 선택한다는 건데 공생하는 듯하지만 실은 닭들이 손해다.
오늘 아침 열려진 문으로 닭장 밖을 나온 닭 한마리가 그 넓은 닭장문을 찾지 못해 좁은 닭장 철망 구멍에 제 대가리와 모가지만 끼우고 들어가려 기를 쓰는 모습을 보면서 새삼 '닭대가리'를 실감했다.
툭 튀어나온 커다란 뇌가 만든 생각으로 사는 인간과 전두엽이 거의 없으면서 머리에 벼슬만 이고 사는 닭 사이엔 많은 차이가 있다.
뇌가 만든 탐진치로 죽을 때까지 고뇌의 바다에서 사는 우리네 인생보다 닭생이 어찌보면 더 행복할 수도 있다.
사실 닭대가리로 분류되는 인간들도 많다.
어쨌든 덕분에 난 혈압약도 끊고 밝은 눈으로 경이로 가득한 자연을 바라볼 수 있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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